한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 재지정과 그 이유
1. 환율 관찰 대상국 · 환율 심층 대상국 · 환율 조작국
미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Monitoring List)은 2015년 제정된 '무역 촉진 및 집행법(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forcement Act)'에 따라, 미국의 주요 교역국 중 환율 정책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설정됩니다. 이 명단에 포함되면 환율 정책에 대한 미국의 면밀한 감시를 받게 되며, 이는 환율조작국 지정의 전 단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환율대상국 지정 기준은 ① 미국과의 양자 무역에서 150억 달러 이상의 무역 흑자 ②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에 해당하는 경상수지 흑자 ③ 환율 시장에서 일방적인 개입이 연간 8개월 이상 지속되며, 12개월 동안 순매입이 GDP의 2% 이상인 경우입니다. 이 세 가지 기준 중에서 2가지에 해당하면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되고, 3가지 모두 해당하면 심층 분석 대상국이 됩니다.
환율 심층 분석 대상국(Enhanced Analysis Country)은 미국 재무부가 발표하는 환율 정책 보고서(Foreign Exchange Policies of Major Trading Partners of the United States)에서 일반적인 '환율 관찰 대상국'보다 더 높은 수준의 관심을 두고 분석하는 국가를 의미합니다. 이 제도는 2020년부터 도입된 개념으로, 외환시장 개입 또는 지속적인 환율 왜곡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더 면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설정되었습니다. 환율 심층 분석 대상국 지정은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환율 관찰 대상국 3대 선정 기준 중 3가지를 모두 충족한 경우와 과거 환율 조작 우려로 반복적으로 환율 관찰 대상국에 지정된 이력이 있는 경우입니다.
환율 심층 분석 대상국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경제적 제재는 없지만,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해당국과 양자 협의 또는 협상을 요청할 수 있고, 외환시장 개입, 투명성 부족, 무역 불균형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베트남, 스위스, 중국 등이 실제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환율 심층 분석 대상국으로 지정된 적은 없지만,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여러 차례 지정되었기 때문에, 향후 지정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환율 조작국(Currency Manipulator)은 부당한 환율 정책을 통해 자국의 무역 이익을 인위적으로 키우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국가를 대상으로 미국 재무부가 지정하는 국가입니다. 이 지정은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와 무역 불균형 개선을 목적으로 외환시장 투명성과 공정 무역을 촉진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미국은 공식 외교 경로를 통해 협상을 개시하는데, 해당 국가에 환율 정책 시정 및 투명성 제고를 요구합니다. 통상 90일 내 '구체적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데, 만약 개선되지 않으면, 무역 제재, 무역협정 재협상 등 추가 조치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무역정책과 금융시장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정된 국가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이번 2025년 6월 5일 발표한 환율 정책 보고서에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환율 정책과 관행의 불투명성이 주요 교역국 중 두드러진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향후 공식 또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위안화의 절상에 저항한다는 근거가 있을 경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2. 한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 재지정
미국은 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재지정하였습니다. 2025년 6월 5일(현지 시간)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환율 정책 보고서에서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스위스 등 9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하였습니다. 미국은 자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상위 20개국의 거시경제와 환율 정책을 평가하고 일정 기준에 해당할 경우 관찰 대상국으로 혹은 환율 심층 분석국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16년 4월부터 미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2019년 상반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2023년 11월 처음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 이는 한국이 세 가지 기준 중 하나인 '미국과의 무역 흑자'만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2024년 11월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3.7%로 증가하고, 미국과의 무역 흑자가 500억 달러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다시 재지정되었습니다.
이번에 한국이 다시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된 주된 이유는, 지정 기준 중에서 대미 무역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기준이 초과하였기 때문입니다. 경상수지(Current Account, 經常收支)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상품, 서비스, 소득, 이전소득 등 주고받은 거래 내역을 정리한 경제 지표로, 곧 일상적인 대외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면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더 많다는 의미이고, 적자라면 외국에 지불한 돈이 더 많다는 의미가 됩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2024년 GDP 대비 5.3%로 전년의 1.8%보다 늘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상품 무역 흑자가 증가했기 때문인데, 상품과 서비스를 포함한 한국의 대미 무역 수지는 2024년 550달러로 전년의 140억 달러보다 크게 늘어났습니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 당국이 원화가 평가절하 압력을 받는 가운데 과도한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2024년 4월과 12월에 외환시장에 개입하였으며, 한국 당국이 2024년에 GDP의 0.6%에 해당하는 112억 달러를 순매도했다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원화 평가절하 압력’을 받는다는 의미는 원화의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올라가는 방향으로 시장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뜻으로,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많다는 것입니다. ‘과도한 변동성에 대응’한다는 의미는 환율이 너무 빠르게 혹은 불안전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조치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첫 보고서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전 정권과는 다른 표현들이 있는데, 재무부는 “불공정한 환율 관행이 포착된 국가에는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를 권고할 수 있다”고 적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시 건정성 조치, 연기금·국부펀드를 활용한 환율 조정 등 시장개입(외환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사고파는 행위) 외에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에 대한 감시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며, 우리나라 국민연금(NPS)의 외환 개입에 대한 경고도 있었습니다. 거시 건성성 조치란 경제 전체의 금융 리스크를 사전에 막기 위해, 정부나 중앙은행이 대출 규제, 외환 관리, 자산시장 억제 등 다양한 정책을 총동원해 위험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미국 재무부는 국민연금(NPS)이 지난해 외화 선물환 매입 한도를 월 10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3배 확대하였으며, 한국은행과의 스와프도 작년 12월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증액하였다고 기술하였습니다. 선물환(FX Forward)이란 지금 미리 환율을 정해놓고, 미래의 특정 날짜에 외화를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거래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오늘 환율로 미래에 거래하는 것인데, 이는 미래 환율 변동에 대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외화 선물환 매입 한도는 은행들이 외화 선물환 계약을 통해 과도한 외화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정한 상한선으로, 외환시장 안정과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위해 운영하는 거시건전성 조치 중 하나입니다. 스와프(Swap)는 일정 기간동안 미리 정해진 조건에 따라 돈(또는 자산, 통화, 금리 등)을 서로 교환하기로 약속하는 계약을 말합니다.
미국 재무부는 앞으로 불공정한 환율 관행을 상대로 강력한 대응책을 시행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도구를 사용하겠다고 표명하였습니다. 앞으로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환율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우리 정부가 앞으로도 미국 재무부와의 상시적인 소통을 통해 환율 정책에 대한 상호 이해와 신뢰를 확대하고,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재무 당국 간 환율 분야 협의도 면밀하게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음 미국 재무부의 환율 정책 보고서 오는 10~11월경 나올 예정입니다.
※ 이 글은 한국무역협회(KITA), 한국경제, 연합뉴스, 중앙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